내가 싫어하는 말은 ‘어린시절’이 중요하다는 것, 그럼 다 커버린 사람은 어쩌라고? 참나..

정신과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관계는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

나도 이 말에 어느정도 동의하긴 한다.

근데 요즘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내면에서 어떤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그럼 다 커버린 사람은 어쩌라고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나는 29살, 벌써 다 커버렸다.

이런 나에게 지금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나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저런 말을 들으면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고 속상함을 느낀다.

내가 다시는 고쳐지지 않는 흠집난 어떤 물건이 된 거 같다고 느낀다.

가끔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중 몇 몇 부분들은 어린시절 나와 나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왔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8년 전만 해도 그럴 때마다 나는 좌절했으며 다른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을 비교하며 ‘내 상처와 결점은 다 우리 부모님 탓이야’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렇게 자기연민에 빠져서 몇 년을 보낸 뒤, 결국 드는 생각은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저런 같잖은 말을 믿을 필요도 없었는데 왜 나는 저 말(‘어린시절이 중요하다. 그건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영향을 끼친다’)을 철썩 같이 믿고 내 결점과 상처가 내 부모님과 내 어린시절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왜 나는 변화를 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너무 바보 같았다.

나는 너무 순진했다..

내 몇 년 인생의 주도권을 저런 하찮은 말에 다 줘버린 게 나중엔 화가 나더라

우리 부모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고 어린 시절의 나는 미숙했기 때문에 둘이 어느정도 상처받고 상처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년의 자기연민의 늪에서 겨우 기어나온 순간, 나는 ‘내가 내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고 내 상처와 결점은 다 내 어린시절에서 온 것만은 아니다’라는 사고의 확장이 일어났다.

이게 한 2~3년 전인데 이렇게 자기연민의 늪에서 빠져나온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아무튼 이 글에 뭐 주저리 주저리 많이 썼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어린시절이 현재와 미래의 나를 결정한다는 것은 정말 희대의 개소리고 나는 어느 순간이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나를 구원하기에 늦은 시기란 절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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