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Y Combinator에서 올린 “All About Pivoting” 영상을 보고 그 영상 중요 부분 정리 + 내 피봇 경험담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최근 철학 앱을 하나 만들려고 하다 결국 그 생각을 접었는데, 그 생각을 접는데 이 영상이 큰 도움을 줬다(고맙다 내 시간을 많이 절약해줘서). 그럼 바로 글 시작해보겠다😎.
사업을 피봇(Pivot)한다는 것, 그 뜻은?
사업을 피봇한다는 말은 ‘지금 하고 있는 사업 말고 다른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의 99%는 창업자가 처음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창업자는 사업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의 사업의 결험, 구멍(?)들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그 구멍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 어.. 이 사업 돈이 안되겠는데?
- 어.. 이 제품/서비스 만드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데?
- 어.. 이 제품/서비스 지금 시장에 내놓기 어렵겠는데?(규제 등의 이유)
이런 난관에 부딪힌 창업가는 깊이 고민한다. 결국 몇몇은 좌절해서 자신의 사업을 아예 접어버리고 ‘나 이제 사업 안해!ㅠㅠ’라고 말하며 떠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집념있는 창업가들은 지금 일하고 있는 제품/서비스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버리고 계속 사업을 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후자가 바로 피봇이다.
피봇을 해야 될 때
자신의 사업이 순항 중이라면 피봇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자신의 사업이 매일 폭풍우 속에서 간당간당한 상황이거나 망망대해에 길을 잃은 것과 같은 느낌을 계속 계속 받는다면 피봇을 고려해봐야 한다.
영상 속 Y Combinator 파트너인 달턴 콜드웰은
if((일이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는지) / (지금까지 이 사업에 투자한 개월 수) < (이 사업 말고 다른 사업을 생각하면 느껴지는 설레임의 정도) * (지금 이 사업 말고 더 나은 사업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피봇하기 }
라 말한다. 그 말인즉슨, 자신이 이 사업에 투자한 만큼 그 결과가 나오지 않고, 이 사업 말고 다른 사업에 더 끌리고, 다른 사업을 본인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느끼면 피봇을 하라는 거다.
정리하자면
- 이 사업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 이 사업은 성장하고 있지 않다.
- 나는 이 사업을 하는데 적합한 사람이 아닌 거 같다(= 다른 사업을 하는 게 나한테 더 잘 어울린다).
- 이 사업이 잘되기 위해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 기대고 있다(예: 자신이 VR 앱을 만들고 있는 개발자인데 ‘페북이 VR시장을 잘 개척하면 내 앱도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우).
- 아이디어 부족으로 더 이상 이 사업을 차별화시킬 방법을 못 찾겠다.
과 같은 경우 피봇을 하라고 한다.
피봇을 하지 말아야 할 때
-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힘들어서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할 때.
- 출시도 영업도 하기 전, 계속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꾸고 포기하고 싶을 때
- 요즘 뜨는 분야에 대한 글을 읽고 그 분야로 별 생각 없이 피봇하고 싶을 때
사람들이 피봇하는데 오래 걸리는 이유
-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이 얼만데..’ 유형
- ‘그래도 이 제품/서비스 쓰는 사람들 몇 명은 있잖아’ 유형
- ‘사람들이 다 내 제품/서비스 좋다고 했어^^’ 유형(=주변 사람들이 직설적이지 않은 경우, 입바른 소리만 해주는 경우)
- ‘나는 내 사업이 망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유형
- ‘왜 고객, 투자자들은 내 제품/서비스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 역시 다른 사람들은 나의 심오한 세계를 이해 못해’ 유형
- ‘계속 하다보면 될 거야!’ 유형(= 본인이 납득할만한 시간이 흘러야지만 포기하는 경우)
이렇게 많은 유형 중에 2번이 가장 피봇하는데 오래 걸리고 힘들어 한다고 한다. 소수의 유저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함. 차라리 자신의 사업이 사람들로부터 아예 냉대를 받으면 포기하기 쉬운데 저렇게 조금의 유저가 있으면 포기하기 정말 어렵다고 한다.
피봇을 하는 방법
이론적 측면
-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사업보다 자신이 더 흥미로워하는 사업(분야, 문제) 찾기
- 자신이 쉽게 만들 수 있고 시장 검증(product market fit)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사업 찾기
실질적 측면 (새 아이디어 검증하기)
- 이 사업이 얼마나 큰 문제를 해결하는지(시장의 크기): 1-10으로 숫자 매기기
- 이 사업이 창업자 본인에게 얼마나 잘 맞는지: 1-10으로 숫자 매기기
- 이 사업을 시작하기 얼마나 쉬운지: 1-10으로 숫자 매기기
- 이 사업이 얼마나 빨리 초기 유저들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지: 1-10으로 숫자 매기기
1~4까지 숫자를 매겨 보면 새 아이디어가 얼마나 창업자에게 적합하고 해 볼 만한 사업인지 견적이 나온다고 한다.
피봇을 할 때 고려해야 할 부분
- 피봇을 아예 못하고! 가망이 없는 하나의 아이디어에만 매몰되어 있는 창업자도 고통을 받지만, 계속해서 피봇하고! 하나의 아이디어에 안주하지 못하는 창업자도 고통을 받는다. 그러니 최적의 구간을 찾아라. (= 꼭 피봇해야겠다고 느끼면 더 고민하지 말고 피봇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던 사업 계속 해라)
- 직원이 있는 경우 피봇을 하기 어렵고 실제로 피봇을 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아직 스타트업 초기 단계, 창업자들만 있을 때 피봇하는 걸 추천한다.
피봇의 좋은 예: 슬랙(Slack)
슬랙은 피봇의 좋은 예라고 말한다. 슬랙의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 필드는 피봇의 고수인데 그는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피봇했다.
첫번째 피봇은 2002년, 폭력적이지 않은 온라인 게임을 만들려고 하다 2004년 피봇해서 사진 공유 웹사이트 플리커(flickr)를 만든 것이고(플리커는 1년만에 야후에 385억원에 인수되어 스튜어트 버터 필드와 그의 창업 멤버들은 떼부자가 됨)
두번째 피봇은 2009년 글리치(Glitch)라는 멀티 플레이어 게임을 만들려다 2013년 피봇해서 온라인 협업 툴 슬랙(Slack)을 만든 것이다. 슬랙은 2021년 7월 세일즈 포스(Salesforce)로부터 30.5조원에 인수된다. 글리치 팀이 슬랙을 만든 계기가 재미있는데, 아무래도 게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음향 팀, 프로그래밍 팀, 디자인 팀 다 같이 일해야하기 때문에 그들은 사내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쓸만한 협업 툴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시장에 쓸만한 협업 툴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그들이 직접 협업 툴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나중에 슬랙이 됐다고 한다.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두번이나 피봇에 성공했는데 그는 피봇을 하는 게 항상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특히 그가 글리치라는 게임을 창업했을 때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 이거 해요~ 투자자 분들 저 이거 할 거에요~ 돈 주세요^^”라고 말하고 떵떵거렸는데 나중에 피봇할 때는 처음 뱉었던 말을 지키지 못해서 창피했다고 말했고, 가장 속상했던 건, 글리치를 잘 만들기위해 다른 도시에서 능력있는 직원을 영입해왔는데 그 사람에게 ‘당신은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말했을 때였다고 한다.
이 사람은 심지어 다른 도시에서 살다가 자신의 부인과 그들의 2살짜리 아이와 함께 글리치 팀이 있는 곳으로 이사오고 집도 구했다고 했는데 이런 해고 통보를 해야했던 건 정말 힘들었고 그 직원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투자받은 돈이 많이 남아있어서 글리치에서 슬랙으로 피봇할 때, 해고된 모든 직원들에게 새로운 직장을 찾아주고 글리치 유료회원이었던 유저들에게는 돈도 다시 다 돌려줄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의 피봇 경험담, 마무리
나도 피봇의 경험이 있다(저렇게 슬랙 피봇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내 피봇 경험담을 말해보자면, 나는 한 한달여간 사이드 프로젝트로 철학 앱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노력했었다. 그래서 나는 ios 앱도 거의 다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갈 컨텐츠도 내가 공들여 만들었다(혼자 철학자들 공부하고 그들이 한 말들 번역해서 넣는 등의 일을 했다). 근데 어느 날, 깊은 고민이 들더라. ‘이걸 정말 내가 하는 게 맞는 걸까?’ 처음에는 그냥 이 생각이 들어도 무시했다. 나는 이미 이 앱이 좋다고 생각했고 이 앱을 함으로써 발전할 나의 모습도 참 기대가 됐기 때문에.
근데 저 고민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질 않더라. 나는 유기동물 보호소 앱 ‘보오 앱’을 메인으로 개발하고 진척시키고 있는데 ‘보오 앱’을 만들 때, ‘보오 앱’에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이걸 정말 내가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생계가 어려워서 ‘이것만 계속 하는 게 맞나’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건 ‘보오 앱’을 포기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돈이 없어서 다른 안정적인 수입원을 만들어 놓고 이걸 해야되나 고민했던 것이다.
근데 철학 앱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디어 단계부터 삐걱대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이 아이디어는 나에게 맞지 않구나.. 나보다 더 이 아이디어를 잘 실현시킬 사람이 있을 거 같다’라고.
내가 철학 앱을 하면서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말해보자면
- 나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앱을 만들고 싶은데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지금 같은 다양성의 시대, 서로 다른 분야 간 협업하는 시대에 맞는 철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철학자들이 하나의 이론, 생각에 매몰되어서 그것만 주구장창 발전시켰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해서 ‘사회가 바뀌었는데 이런 철학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떤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그것을 하면서 변화하는 나의 모습이 만족스러워야되는데 나는 철학 앱을 만들며 철학만 주구장창 공부해야하는 게 싫었다. 내가 더 공부하고 싶다면 다른 방향으로도 자연스럽게 뻗어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철학 앱을 그만두게 되었다.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더라.
그래서 그만두려고 생각하고 다른 앱을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결국 나는 이 웹사이트 키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서 그리하기로 했다(내 피봇의 결과다). 일단 앱을 네이티브로 만들면 2개나 만들어야하고 또 관리도 지속적으로 해야하기 때문에(고도화, 버젼 업데이트 등) 그냥 이 웹사이트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은 옵션 같아 보였다. 나는 현재 이 웹사이트를 키우려고 하루에 글을 2-3개 쓰고 있다.
솔직히 피봇을 잘하면 시간을 엄청나게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가치있는 것은 본인이 가진 시간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면 창피함, 힘듦을 무릎쓰고 피봇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Y Combinator는 나한테 항상 좋은 인사이트를 준다. 창업에 관심이 많다면 Y Combinator 유튜브 채널은 꼭 보길. 보석 같은 인사이트들이 영상 속에 녹아있다.)
*영상은 여기에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