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카카오 창업스토리)

카카오는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기업이다. 카카오가 소유하고 있는 서비스는 카카오톡, 티스토리, 브런치, 멜론, 카카오페이, 카카오 T, 카카오 웹툰, 카카오 헤어샵 등이 있다(여기서 카카오 헤어샵은 골목상권 침해 논란 때문에 사람들의 반감이 너무 심해 대중화하는데 실패했다). 카카오는 경영자 먹튀 논란, 문어발식 확장으로 현재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런 안 좋은 상황에도 카카오는 꽤 건재한 편이다. 사람들은 매일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카카오톡을 대체할만한 플랫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온라인 대영제국을 만든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스토리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왼: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오: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라이언이 김범수를 모티브로 했다는 썰이 있다. 실제로 김범수의 영어 이름은 브라이언임. 음,, 썰이라기엔 너무 아귀가 잘 맞는데..?ㅎㅎ

카카오 창업스토리

대학을 마치고 삼성에 취직

1년 재수해서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들어간 김범수는 같은 과 대학원까지 마친 후 1992년 삼성 SDS(삼성 데이터 시스템)에 취직한다. 김범수는 인터넷이 뜰 것이라고 예측하고 컴퓨터를 많이 할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서 김범수는 훗날 네이버를 창업하는 이해진을 만났고 김범수와 이해진과의 특별한 인연은 여기서 시작된다. 김범수는 6년 동안 SDS에서 근무하며 PC 통신 유니텔도 개발하고 원 없이 컴퓨터를 했으나 대기업 안에서의 사업 확장 제약, 인터넷이 태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에서 나와 야생으로 창업하러 떠난다. 이해진도 김범수가 창업하러 떠난 후, 1년 후 자신도 네이버를 창업하러 떠난다.

삼성 SDS 시절,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 사원 때 (얼굴 너무 좋네요 ㅎㅎ 사람이 풍족해보임)

한양대 앞 PC방 차리고 한게임 창업 자금 조달

1998년 ‘인터넷 게임을 만들자!’라고 생각하며 한게임을 창업했지만 사업 초기라 돈이 진짜 하나도 없어 막막했던 김범수는 한양대 앞 ‘미션넘버원’이라는 PC방을 차리고 거기서 한게임 사업 자금을 조달한다. 그는 이 PC방 하나 차리는데도 사채를 끌어써야 할 만큼 돈이 없었으나 다행히 스타크래프트의 유행으로 PC방을 찾는 사람이 많아 PC방 사업에 성공한다(ㅋㅋ). 그는 PC방에서 번 돈으로 한게임 개발에 매달리면서 PC방 요금 정산 프로그램도 개발하는데, 이 요금 정산 프로그램의 개발로 한게임은 많은 PC방 바탕화면에 깔릴 수 있게 된다(김범수는 PC방 점주들에게 한게임을 바탕화면에 깔아주면 PC방 요금 정산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는 딜을 제시했고 많은 점주들은 그것을 받아들임ㅎ).

악마의 게임 스타크래프트 덕에 성장할 수 있었던 한게임.

한게임, 출시하자마자 대박!

1999년 12월 국내 최초의 게임 사이트 한게임은 출시됐고 한게임은 출시하자마자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오프라인에서만 즐기던 바둑, 장기, 포커, 고스톱 등을 드디어 온라인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한게임은 나날이 사용자 수가 급증한다. 하지만 한게임은 급증하는 사용자 수에 따라오는 서버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했고 서버 관리,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 등의 이유로 2000년, 한게임 출시 5개월만에 네이버 이해진과 합병을 시도한다.

당시 네이버 이해진은 투자 유치에 성공해 자본적으로 넉넉했으나 이용자 수가 없는 것이 네이버의 가장 큰 흠이었기 때문에 그는 급속도로 성장하던 한게임과 손을 잡으면 그의 사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김범수와 손을 잡는다. 그렇게 네이버와 한게임이 한 배를 타게되면서 한게임은 게임 부분 유료화에 성공해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찾았으며 네이버도 시간이 지날수록 포털 사이트 점유율이 점점 높아져 2004년에는 그때 포털 사이트 1위였던 다음을 누르고 대한민국 포털 사이트 1위를 장악한다(👏👏👏).

대기업이라는 울타리에서 나와 야생에서 재회한 두 사람 (왼: 이해진, 오: 김범수)

NHN 퇴사, 아이위랩 창업

NHN(Naver Hangame eNtoi, 네이버 한게임 합병된 회사)는 승승장구했으나 2007년 김범수는 NHN을 나오는 결정을 한다. 그가 왜 NHN을 나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람들은 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서 나왔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는 NHN을 나와 바로 다른 스타트업 아이위랩(iWelab)을 창업한다. 아이위랩은 콘텐츠 공유 사이트인 부루닷컴을 개발하고 미국에 출시해봤으나 망해버리고 그 이후로 네이버 지식인과 비슷한 위지아닷컴도 개발해 국내에서 조심스럽게 선보여봤으나 또 망해버린다. 김범수는 연달아 망하는 사업에 많이 좌절하고 지쳐서 2009년 안식년을 갖기로 결정한다.

국내에 출시했던 위지아닷컴. 쫄딱 망함.

가족들과 안식년, 카카오톡 출시

거듭된 실패로 지칠대로 지쳐있던 김범수는 가족들과 함께 안식년을 가진다. 그의 아이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는 이 둘을 1년 휴학시킨 뒤, 같이 세계여행을 가고 PC방에서 새벽까지 게임도 하며 일년 가까이 오롯이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가 2009년 11월 아이폰이 우리나라에도 출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스마트폰이 인터넷 다음의 혁신이 될 것이라고 직감하고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해 카카오톡을 2010년 초 출시한다.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대.박.이었다. 카카오톡은 출시 한 달 만에 50만이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다 🎊.

김범수가 모바일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미 미국에서 아이폰을 2년 동안 사용해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는 미친듯한 확장

2012년 카카오 게임 출시, 2013년 카카오 페이지 출시, 2014년 카카오, 다음 합병, 2015년 카카오 택시, 카카오 대리, 카카오 헤어 출시. 계속 이렇게 확장하다 결국 대중들의 미움을 사게 됨. 골목 상권까지 침해한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카카오 경영진들의 먹튀 논란

카카오가 회사를 다 쪼개서 상장시켰는데 2021년 11월 3일에 상장된 카카오 페이를 2021년 12월 10일에 임원들 8명이 44만주 팔아버림. 이걸로 류영준(당시 카카오페이 대표)은 460억원, 신원근(당시 카카오페이 차기 대표 내정자)은 60억원을 챙겼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카카오 경영자들의 오너십에 의문을 가지게 됐으며 카카오의 신뢰도도 급하락했다.

*여기서 ‘자기 지분 자기가 팔았는데 이게 왜 문제가 돼?’ 물을 수 있는데, 그건 이 사람들은 한 회사의 경영진이기 때문이다. 한 회사의 임원, 경영진이라면 이 회사 주식을 들고 있으며 회사를 성장시키는 게 그들의 사명(?)이자 목표인데 그것을 하지 않고 그냥 상장되자마자 돈 받고 팔아버리는 모습이 이 회사에 대한 신뢰도를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근데 뭐 법적으로 이걸 어떻게 제한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다. 그냥 사람들이 기대하는 ‘책임감 있고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가의 모습’에서 어긋나서 욕먹는 것.

느낀점, 정리

오늘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에 대해 알아보면서 느낀점은 김범수는 진짜 행동력있고 전략적이고 감이 좋다는 거다. 일단 인터넷이 뜰 거라고 생각해 대기업을 그만두고, 모바일이 뜰 거라고 생각해 카카오톡을 계획했다는 것을 보면 ‘와… 이 사람 시장의 흐름을 왜 이렇게 잘 읽어?!’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적절히 잘 읽는 거 같아서 대박을 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피씨방에서 요금 정산 프로그램 만들어서 그걸로 점주들이랑 협상해 한게임을 피씨방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면 항상 ‘이걸 어떻게 홍보할까🤔’가 고민인데 제품 개발 당시 먼저 홍보 전략을 짰다는 것, 그리고 그 홍보 전략이 1차원적으로 그냥 돈 주면서 ‘이것 좀 광고해줘’가 아닌 상대방에게도 이득이 될만한 것을 제시하면서 ‘나는 이거 줄게, 너는 이거 해줘^^’라고 말한 게 김범수가 얼마나 전략적인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거 같다.

김범수는 흙수저에서 시작해 현재 삼성 이재용 회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나라의 부자 순위 1위를 다투고 있다. 그의 성공에는 물론 운도 있었지만(미국 NHN에서 일하며 한국 아이폰 출시 전, 미국에서 2년간 먼저 아이폰 써봤음) 그의 발 빠른 행동력, 전략가적인 면모도 분명히 그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2011년 인터뷰에서 카카오톡으로 글로벌로 나가겠다고 했는데 10년 후인 지금에서야 겨우 웹툰 쪽으로 치고 나가는 중. 조금 더 빨리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했다면 카카오의 이미지도 더 좋았을 거 같다.

그럼 오늘의 방구석 MB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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