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철학
-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면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면 침묵해야 한다.
-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는다. 똑같은 단어라도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말은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 철학의 형이상학적 질문들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철학가들이 질문하는 그것들은 그것들이 사용된 문맥에서 이미 끄집어내졌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용되어야만 생명을 가진다. 어떤 단어가 문맥 속에서 끄집어내져서 독단적으로 존재하려고 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질문들을 던지고 그것이 무엇인지 고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진실보다 명확한 것이 중요하다.
명언
- 저는 파리가 병 속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게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상의 한계이다.
- 공구 상자에 있는 공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망치, 펜치, 톱, 드라이버, 룰, 풀 냄비, 풀, 못, 나사 등. 언어의 기능은 이러한 공구들의 기능만큼 다양합니다.
-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그것이 사용될 때입니다.
-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지며 ‘왜’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은 마치 관광객들이 어떤 건물 앞에 서서 그 건물에 대한 역사를 읽느라 바쁜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그 건물을 진짜 보지 못하지요.
-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 언어는 생각을 변장시킨다.
- 언어의 뜻은 문맥 안에서 그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느냐이다.
설명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철강 산업을 이끌던 기업가 중 한 명이어서 그의 집안은 매우 매우 부유했으며 당시 유명 인사였던 구스타프 클림트, 오귀스트 로댕, 요하네스 브람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교류할 정도로 영향력있는 집안이었다. 그는 14살까지 집에서 공부했으며 19살에는 영국으로 유학가 항공 공학을 공부했으나 공부 중 수학과 철학에 깊은 관심이 생겨 22살에 캠브리지 대학에 가서 공부한다. 24살에는 오스트리아에 돌아왔으나 그가 오스트리아에 돌아온지 1년만에 1차 세계 전쟁이 발발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군대에 자원해서 입대했으며 전쟁 중 죽음을 직면하는 경험이 그에게 지적 명료함과 도덕적 기품을 얻을 수 있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그의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이 남아있었는데 그는 그의 몫의 유산을 다 그의 이미 부유한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고 홀연히 떠난다.
그는 군대 생활 중 그의 첫 책인 ‘논리철학 논고’을 완성했으며 4년 후 1차 세계 전쟁이 끝나고 오스트리아 빈에 돌아온다. 그가 빈에 돌아온 후 한 달 동안은 프라터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거친 청년들과 성적 관계를 맺으며 시간을 보냈다(비트겐슈타인은 양성애자로 추정된다). 빈에 정착한 후 그의 첫 책 ‘논리철학 논고’는 출판되며 그는 ‘논리철학 논고’에서 그가 모든 철학적 물음에 답했고 철학과 관련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 철학과 결별하며 다른 직업을 찾아나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초등학교 선생님, 정원사, 건축가 등 다양한 일을 하며 9년을 보낸다. 하지만 그가 빈의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 모임에 나가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꺼져있던 철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겼으며 40살이 되어 그는 다시 철학을 하러 캠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온다. 그는 영국 캠브리지에서 강의를 하고 ‘논리철학 논고’의 생각들을 수정하며 그의 두번째 책 ‘철학 탐구’를 쓰기 시작한다.
1939년, 그가 50살 때 독일 히틀러가 주도한 제 2차 세계 전쟁이 발발하는데 그는 다행히 캠브리지 대학교에 교수로 지내며 영국 시민권을 받아서 전쟁의 피해를 훨씬 덜 받을 수 있었다. 전쟁 초기 그는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런던의 한 병원에서 일했으며 전쟁이 끝날 때쯤에야 그는 ‘철학 탐구’에 온전히 집중할 시간을 얻게 된다. ‘철학 탐구’는 그가 살아생전 출판하지 못했으며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에 의해 그가 죽은지 2년 후 출판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네 명의 형 중 세 명이 자살을 했으며 비트겐슈타인 본인도 ‘나는 자살 생각을 하지 않고 넘어간 날이 거의 하루도 없었다’고 자신의 친구와의 편지에서 썼지만 그가 죽을 때는 “내가 정말 멋진 인생을 살았노라고 전해줘.”라고 말하며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특징
재정상태 O, 인간관계 O, 건강 O, 작품 소수, 결혼 X
국적, 수명
오스트리아 국적 -> 추후 영국 국적, 1889~1951(62세로 사망)
직업
철학가, 교수, 정원사, 초등학교 선생님
중요 사건
- 오스트리아 빈의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남
- 처음엔 공학을 공부, 하지만 수학과 철학에 관심이 생겨 캠브리지 대학에 가서 공부
- 1차 전쟁 발발,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기 위해 군대 입대
- 전쟁 중 ‘논리철학 논고’ 완성
- 1차 전쟁 종결,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와 방황하며 방탕한 시간을 잠시 보냄
- ‘논리철학 논고’ 출판, 철학 그만둠
- 초등학교 선생님, 정원사, 건축가 등 다양한 일을 하며 9년을 보냄
- 빈의 지성인들과 교류하며 철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 캠브리지로 돌아와 강의하기 시작, ‘철학 탐구’ 쓰기 시작
- 영국 시민권 땀, 2차 전쟁 발발
- 2차 전쟁 중, 병원에서 일하며 전쟁 부상자들 도움
- 2차 전쟁 종결, ‘철학 탐구’ 다시 집중해서 쓰기 시작
- 62세의 나이로 평온히 사망
- 죽은 후, 그의 제자가 ‘철학 탐구’ 출판
작품 목록
- 논리철학 논고
- 철학 탐구
- 문화와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