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철학
- 인간 본성에 회의적, 우리는 타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음(“미성숙해지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 종교의 권위를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함(“세상에 인간의 이성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 도덕성, 윤리 강조(“사람 자체를 목적으로 대해라. 절대로 사람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대하지 말라.”)
- 선한 의지 강조(“선한 의지는 그 의지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나 얻을 수 있는 것, 그 의지로 의도하는 결과를 달성하는 게 적합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것입니다.”)
- 스스로 생각하는 이성 강조(“자신의 고유한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 이것은 깨달음의 모토이다.”)
명언
- 깨달음이란 인간이 스스로 부여한 미성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미성숙함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논리를 쓸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인간의 이 미성숙함은 자신의 논리가 부족해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게 아닌 다른 사람들의 지도 없이 자신의 논리를 사용하는 것에 필요한 개인의 용기와 결심이 없어서 부여된 것입니다. Sapere Aude! “자신의 논리를 사용하는 것에 용기를 가지십시오.” 이것이 깨달음의 모토입니다. …… 개인이 그의 본성이 된 이 미성숙함을 벗어던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개인은 심지어 오랜 시간 그의 상태에 푹 빠져 그의 논리를 더 이상 쓸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이 미성숙함을 벗어던지라는 시도를 허락한 적이 없죠. 규칙과 공식, 본연의 재능의 오용은 개인에게 영구적인 미성숙함의 족쇄를 채웁니다. 이 족쇄를 벗어던진, 미성숙함에서 해방된 사람은 자유로운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작은 도랑을 넘는데도 불확실한 도약을 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미성숙함을 벗어던지는 데는 소수만이 성공합니다. 자신의 정신을 연마함으로써 그들은 미성숙함으로부터 해방되고 안전한 길을 걷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 미성숙해지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나의 논리를 대체할 책과 나의 양심을 대신할 목사와 나의 식단을 결정할 의사만 있다면 나는 나 자신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돈을 지불할수만 있다면 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해 성가신 일들을 대신해줄 것입니다. 개인을 감독하는 이 호의적인 감시자들은 개인이 성숙해지려는 노력을 굉장히 어렵고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 가축(개인)을 바보같이 만들고 이 온순한 생물(개인)이 그들에게 달린 수레를 끌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못 내딛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수레를 끌지 않고 혼자 걸으면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보여주죠. 이 위험은 실제로 그렇게 심각하지 않고 몇 번 실패한 다음엔 분명히 혼자 걷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지만 이런 감시자들의 노력은 개인을 소심하게 만들고 겁을 내게 만들어 개인이 성숙해지려는 더 이상의 시도를 못하게 합니다.
- 선한 의지는 그 의지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나 얻을 수 있는 것, 그 의지로 의도하는 결과를 달성하는 게 적합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것입니다. 선한 의지는 그 자체로 어떤 경향에 호의적이어서 나오는 그 무엇에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훨씬 더 존경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경향에 호의적이어서 나오는 것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선한 의지는 훨씬 더 존경받아야 하는 것이죠. 만약 운명이 호의적이지 않아서, …… 만약 엄청난 노력에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면 마지막엔 선한 의지만이 보석처럼 남아서 그 자체로 완벽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빛을 발합니다. 선한 의지의 유용함 또는 무익함은 그 본연의 가치에 더 가치를 부여하지도 빼지도 않습니다.
- 회의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쉬는 곳이다. 그곳에서 인간은 자신의 맹신적인 교리들에 대해 고찰하고 반성하며 자신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아내어 미래에 자신의 길을 더 믿음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회의주의는 이성이 완전히 정착하는 곳은 아니다. 회의주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우리 지식에 완전히 확신을 가져야만 가능하며 사물 자체와 그 사물을 에워싼 한계들까지 완전히 알아야만 가능하다.
- 부유함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게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지 않아도 그 상황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음에 대한 것이다.
- 가까이 보라. 아름다움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 나는 믿음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식을 부정해야 했다.
- 우리의 모든 지식은 감각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은 곧 우리의 이해(understanding)가 되며 마지막엔 우리의 이성(reason)이 됩니다. 그리고 세상엔 이성보다 더 높은 것은 없습니다.
-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 일할 것, 사랑할 사람, 소망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 천재는 다른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배워야 하는 개념에 혼자 도달하여 그 개념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 깨달은 자만이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사람 자체를 목적으로 대해라. 절대로 사람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대하지 말라.
- 진실이 그들을 죽인다면, 그냥 죽게 놔둬라.
- 자신의 고유한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 이것은 깨달음의 모토이다.
- 순수함에는 뭔가 눈부시게 빛나는 점이 있습니다. 반면, 순수함의 나쁜 점은 자신을 잘 보호하지 못하고 쉽게 유혹당한다는 것입니다.
- 폭력 없는 법과 자유의 상태(무정부 상태), 자유 없는 법과 폭력의 상태(전제국), 자유와 법이 없는 폭력(야만), 자유와 법이 있는 폭력(공화국)
- 결혼은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성적 속성을 평생 동안 함께 소유하기 위해 결합하는 것입니다.
- 뭔가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뭔가를 직접 하는 것을 말한다.
- 여자는 통제(control)를 원하고 남자는 자제(self-control)를 원한다.
- 우리는 바쁠수록 우리가 살아있음을 더 강하게 느끼고 삶에 대해 더 의식하게 됩니다.
-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세기의 가장 훌륭한 지성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설명
칸트는 1724년 독일 쾨느히스베르크라는 도시에서 태어난다(현재 이 도시는 러시아의 도시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구를 제작하는 수공업자였으며 그의 가족은 생계를 걱정하진 않았지만 그리 풍족한 집안도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루터 교회에서 파생된 경건주의를 추구했으며 부모님의 영향으로 칸트는 8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경건주의 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부모님의 신조대로 ‘성실, 정직, 청결, 독립’의 가치를 그의 인생에 가지게 되었다. 16살 때는 쾨느히스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나 그는 수학과 물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 다니던 대학의 교수님의 도움으로 칸트는 아이작 뉴턴의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20살에는 “활력을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을 직접 쓰기도 한다.
그는 공부하는 것을 즐겨해 아카데미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어했으나 22살 때 아버지의 사망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느껴 곧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향을 떠나 6년 동안 가정교사 일을 해야 했다. 30살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 ‘불에 관한 고찰에 대한 간결한 개요’, ‘형이상학적 인식의 제 1원칙에 대한 새로운 해명’ 등을 써서 무급 강사로 대학교에서 가르칠 자격을 얻는다. 그가 32살 때는 그 대학의 논리학, 형이상학(철학) 전공 교수가 사망해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또 다른 논문을 쓰며 지원하지만 결국 그 자리를 얻는데는 실패한다. 칸트는 무급 강사로 15년 동안 일하며 매주 20시간씩 논리, 형이상학, 윤리(철학)에 대해 강의하며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얻는다. 그의 강의는 생동감있고 유머러스했다고 한다.
그는 무급 강사 일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워 42세에는 도서관 사서로도 취직해 무급 강사 일과 병행한다. 결국 그는 46세에는 그의 성실함과 끊임없는 지식의 탐구가 인정받아 그가 그토록 원하던 논리학과 형이상학(철학) 교수로 임명된다(!!). 그가 철학 교수로 임명된 후, 그는 학문적 지평을 넓혀가며 이성적 신학, 교육학, 군사 요새 등에 관해서도 강의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10년 동안 강의하며 철학을 심도있게 공부한 그는 51살에 ‘순수이성비판’을 썼으며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도 곧이어 집필한다. 이 다수의 철학 작품들은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었으며 그의 철학은 1780년대 독일 철학을 지배하게 된다.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집필활동을 했으며 72살이 되서야 대학 교수 자리에서 은퇴하게 된다. 칸트는 그의 80세의 생일이 지나고 사망한다.
특징
재정상태 △, 인간관계 O, 건강 O, 작품 다수, 결혼 X
국적, 수명
독일, 1724~1804 (80세의 나이로 사망)
직업
가정교사(6년), 대학교 무급 강의자(15년), 도서관 사서, 철학 교수
중요 사건
- 독일 가난한 수공업자 집안에서 태어남
- 부모님의 영향으로 8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경건주의 학교에서 공부
- 16살 때 그가 살던 지역 대학 입학
- 대학에서 수학, 과학에 관심 생김
- 아카데미에 머무르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사망으로 생계 걱정
-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6년간 가정교사 활동
- 30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논문 집필하며 대학교에서 강의할 자격 얻음
- 무급 강사로 15년간 활동, 무급 강사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워 나중엔 도서관 사서로도 활동
- 46세에 드디어 그가 원하던 철학 교수의 자리에 오름, 생계 걱정 덜고 학문에 집중할 수 있게 됨
- 10년동안 대학에서 강의하며 학문의 지평을 넓힘
- 51세부터 엄청난 작품들을 써내려감(예: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
- 72세에 교수 은퇴
- 80세에 사망
작품 목록
- 도덕형이상학 정초
- 질문에 대한 답: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순수 이성에 대한 비판
- 실천이성비판
- 판단력비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