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철학
- 자신과 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는 것 강조(“반드시 반대편의 사람을 만나 그의 입장을 들어봐야 합니다.”)
-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말함(“지금 이 시대에는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것, 관습에 무릎 꿇기를 거부하는 것이 사회에 엄청난 봉사가 되었다.”)
- 인간이 가장 추구하는 것은 생계 다음으로는 자유라고 강조(“인간 본성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음식과 의복 다음으로는 자유입니다.”)
- 개인의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는 점 강조(“자유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는 유일한 자유는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지 않고 다른 사람이 그들의 것을 얻으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자유입니다.”)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의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조화시키려는 사상, 공리주의 추구(“공리주의는 행위자 자신의 최대 행복이 아닌 전체 행복의 최대량을 말합니다.”)
명언
- 천재는 항상 소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가 천재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재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만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습니다. 천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개성이 뚜렷하며 사회가 구성원에게 그들 고유의 성격을 만드는 고생을 방지하기 위해 제공하는 사회의 정형화된 소수의 틀 안에 맞추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어려워 합니다. 천재는 고통스러운 압축의 과정 없이는 사회에 맞추지도 못합니다. 만약 천재가 소심해서 사회가 천재를 그들의 틀 안에 맞추려는 시도에 동의하며 그들의 확장 가능하던 모든 부분들을 사회의 압력 속에 확장하지 못하게 놔둔다면 사회는 그들의 천재성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천재가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끊어낼 수 있다면 그들은 사회에게 ‘평범한 것으로 축소하지 못한 표식’이 되고 사회는 그들을 “길들여지지 않은”, “이상한” 같은 말들로 지적하며 엄숙한 경고를 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나이아가라 강을 보고 왜 네덜란드 운하처럼 둑 사이를 천천히 흘러가지 않냐고 불평하는 것과 같지요.
- 지금 이 시대에는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것, 관습에 무릎 꿇기를 거부하는 것이 사회에 엄청난 봉사가 되었다. 거대한 여론의 횡포는 이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괴짜들을 비난하기 때문에 이 여론을 깨기 위해서라도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괴짜가 되는 것은 사회에 바람직하다. 괴짜성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강할수록 커진다. 사회의 괴짜성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천재성, 정신적 활력, 도덕적 용기의 양과 비례한다. 이제 더 이상 감히 괴짜가 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건 이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이다.
-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 다른 의견을 가진다면, 인류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다른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전쟁은 추악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전쟁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도덕과 애국심의 부패하고 타락한 상태가 최악의 상태입니다. 한 민족이 주인만을 섬기는 이기적인 이유로 전쟁을 시작해 사람들이 대포를 쏘거나 총검을 찌르는 도구만으로 이용되는 것은 추악합니다. 하지만 압제적인 불의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 정의와 선에 대한 그들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전쟁, 그들의 정직한 자유 의지로 시작한 전쟁은 그 민족의 재생을 위한 도구입니다. 지키고 싶은 어떤 것이 없는 사람,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 외 다른 것들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어떤 사람이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는 이상 평생 자유로울 수 없는 비참한 인간입니다. 인류가 정의와 불의가 끊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할 때, 인간은 필요할 때는 서로를 위해 기꺼이 싸워야 합니다.
- 자신이 지지하는 한쪽 편의 입장만 아는 사람은 그 사건에 대해 진정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의 논리가 탄탄해서 누구도 그 논리를 반박하지 못할 수 있지만 자신의 반대편의 입장에 대해 내가 제대로 반박할 수 없거나 그들의 입장을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내가 한쪽 편만 들어 그것을 지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나의 측근, 나의 선생님으로부터 내 반대편에 대한 입장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반대편의 사람을 만나 그의 입장을 들어봐야 합니다. … 반대편의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가장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준비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과 만나 그를 알아가야 합니다.
- 사람은 그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의 행동하지 않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다른 사람에게 악을 끼친 사람은 그 피해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 나는 나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나의 욕망을 제한함으로써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 인간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그의 욕망이 강해서 그런 게 아니고 그의 양심이 약하기 때문이다.
- 자신의 지성이 어떤 결론을 내리던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그의 첫번째 의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없습니다.
- 인간 본성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음식과 의복 다음으로는 자유입니다.
- 세상이 자신을 위해 계획한 것을 그냥 선택하는 사람은 원숭이 같은 모방 능력 외에는 다른 능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계획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그가 가진 모든 능력을 사용합니다.
-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이 가진 힘은 그것에 그저 관심이 있는 10만명이 가진 힘을 다 더한 것과 같다.
-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낫다. 만족한 바보보다 만족하지 못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 저는 행복한 사람은 행복 외의 다른 것에 집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행복, 인류의 발전, 심지어 어떤 예술이나 무엇의 추구를 자신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여기며 사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목표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행복 외의 다른 것을 목표로 두면 행복이 따라옵니다. … 개인은 스스로 행복한지 물어보면 더 이상 행복하지 못하게 됩니다.
- 자유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는 유일한 자유는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지 않고 다른 사람이 그들의 것을 얻으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자유입니다. 개인은 모두 자신의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영적 건강을 지키는 관리자의 역할을 합니다.
- 공리주의는 행위자 자신의 최대 행복이 아닌 전체 행복의 최대량을 말합니다.
설명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에 런던 북부 교외에서 태어난다. 그는 3살 때는 그리스어를 배우고 6살 때는 라틴어를 배웠으며 10대 초에는 경제, 논리학, 수학 등을 배웠다. 15살 때는 철학, 심리학까지 공부했으나 이와 같은 오랜 기간의 집중적인 학습과 아버지가 주는 공부에 대한 부담감은 그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며 20살에는 정신쇠약과 우울감으로 심하게 고통받았다. 그렇게 1년간의 고통스러운 시간 이후, 존은 시와 낭만주의에 빠지며 조금씩 회복한다. 그는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괴테 등의 영향을 받으며 낭만주의와 깨달음의 철학을 융합시키는데 점차 관심을 보인다(이런 관심은 그의 일생 내내 지속되며 그는 그의 철학에서 이를 융합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이런 그의 활동은 프랑수아 기조(프랑스 정치가이자 역사가), 오귀스트 콩트(프랑스 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프랑스 외무장관) 등 다양한 정계, 지식인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그에게 가져다준다.
24살에는 추후 그의 부인이 될 해리어트 테일러를 어느 저녁 만찬에서 만나며 이 둘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해리어트 테일러는 이미 결혼 4년차 유부녀였으며 테일러의 남편이 죽을 때까지(존이 43세일 때)는 존과 플라토닉한 애정 관계만을 유지한다. 해리어트 테일러는 남편이 죽은 후 2년 뒤 존과 결혼했으며, 이후 죽을 때까지 존의 반려자로 함께 산다. 해리어트 테일러는 존에게 아이돌 같은 존재였으며 존은 해리어트가 자신의 작품들의 공동 저자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존의 정신세계와 그의 작품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존과 함께한지 7년 후 사망하며, 사망 당시 그녀는 존과 프랑스를 여행 중이었다고 한다. 해리어트는 프랑스 아비뇽이라는 도시에 묻혔으며, 존은 그녀의 묘지 근처 집을 구입해 그 집에서 그의 남은 대부분의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17살 때부터 35년간 영국 동인도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 아래에서 서기로 일했으며 이후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나중엔 서신 수석 심사관(Chief Examiner of Correspondence)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 자리는 당시 국무부 차관 자리와 맞먹는 자리였으며 영국 식민지 관련 공문서들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존은 철학을 계속 연구하기 위해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으며 이 자리에서 오래 일하며 자신이 철학에 집중할 수 있는 경제적 안정감을 얻었다고 추후 회고했다.
해리어트 부인이 죽고 그는 59살에 프랑스 아비뇽에 머무르며 조용한 생활을 하던 중,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그는 그때 당시 주류가 아니었던 여성 참정권 등을 주장했으며 하원의원으로 선출돼 3년간 하원의원으로 활동한다. 그는 이후 67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사망 후에는 프랑스 아비뇽 그의 부인 옆 묘지에 함께 묻혔다고 한다.
특징
재정상태 O, 인간관계 O, 건강 O, 작품 다수, 결혼 O, 자녀 3명
국적, 수명
영국, 1806-1873 (67세 나이로 사망)
직업
영국 동인도 회사 서기->서신 수석 심사관(승진), 런던 웨스트민스터 하원의원
중요 사건
- 1806년에 런던 북부 교외에서 출생
- 어렸을 적부터 영재 교육 받음
- 17살 때부터 영국 동인도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 아래에서 서기로 일함
- 지속적인 공부에 대한 부담감과 아버지의 감시로 인해 20살 때는 정신쇠약에 시달림
- 시와 낭만주의의 도움으로 정신쇠약 회복
- 24살에는 해리어트 테일러를 저녁 만찬에서 만나 사랑에 빠짐
- 43세까지 플라토닉한 관계 유지, 해리어트 테일러의 남편 사망
- 45세에 해리어트 테일러와 결혼
- 7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 부인은 프랑스 여행 중 사망해 프랑스 아비뇽에 묻힘
- 부인이 죽은 후, 조용한 생활을 했는데 그러던 중 59세에 런던 웨스트민스터 하원의원으로 선출
- 3년간 하원의원 활동
- 67세의 나이로 사망
작품 목록
- 자유론
- 공리주의
- 자서전
- 논리학체계
- 대의정부론
- 여성의 종속
- 종교에 대하여
- 사회주의론